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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8 07:39 리뷰/뉴스리뷰
트위터에 글이 올라온다.  잡년행진(Slut Walking)에 동참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장난하나?"였다.  그러더니 주말에는 진짜로 행진에 대한 사진들이 올라온다.  MB와 그 아류들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사상이 배금주의와 결합하였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사상의 부재는 가슴의 부재이다.  가슴의 부재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고 소통이 부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항상 심오하고, 사색적일 수는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행동을 보면 사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쉽게 간파된다.  사상이 없는 인간이 한국정치를 20년 뒤로 후퇴시켰듯이, 한국의 여성운동 또한 그 무사상성으로 인해 20년은 후퇴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성부의 조리퐁사건' 이후 최악의 무뇌충의 헐벗은 사상이 극단적인 표현력을 가진 무의미한 행진이었다는 느낌이다.

캐나다의 Slut Walking의 발단과 우리가 꿈꾸는 사회
캐나다에서 Slut Walking은 강간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Slut처럼 옷을 입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연내용에서 비롯되었다.  헤픈여자처럼 옷을 입고 있으면, 강간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발끈하고 거리 시위를 결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성 지배적 사회구조에서 이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이러한 남성지배의 구조에서 유통되는 언어 또한 폭력이라는 것이다.  꼬투리 잡기가 유행이었던 저급한 여성학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제법 의미있는 내용이라고 가정을 하면, 방향성도 역시 그래야 했지만 한국에서의 잡년행진에서 부각된 내용들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권리'로 축소된다.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고려대 의대생의 강간 사건으로 심기가 불편하던 것만큼이나 불편해 진다.  강간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대응은 달라진다.  분명 성폭력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할 수도 있고, 여성이 남성에게 가할 수도 있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사회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사회병리현상이고, 정신적인 황폐화의 결과이다.  분명히 쌍방적인 현상이지만, 남성이 당한 성폭력은 "병신" 혹은 "좋았겠네"로 축소되고, 여성이 당한 경우는 "그럴만하니까 그랬지" 혹은 "평소 조신하게 하지 그랬어"로 치부된다.  여성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모두 다 성적노리개의 대상으로 보지 않듯이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병리현상이라는 것은 범죄와 같은 것이다.  생계형 범죄라는 것은 경범죄이지 강도를 생계형 범죄라고 할 수는 없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는 수준이 생계형 범죄이지, 너무 가난해서 유흥비가 없어 살인을 하거나 흉기로 사람을 위협하고 무엇을 갈취하는 것은 생계형 범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정신적인 결함이 있거나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적 인신매매(남창, 여창)가 존재하고, 돈으로 살 수 없다면 힘으로 빼앗는 것이 정당한 사회에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폭력과 폭행은 항존하는 것이된다.  사회병리현상이 없는 사회, 그것이 최소화된 사회,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사회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집 문을 열어놓고 살더라도 누구하나 강도나 도둑을 맞지 않고 살고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의무를 생각할 줄 아는 사회, 다시말해 성숙한 시민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인 것이다. 

레닌의 죽음을 부른 성숙한 시민사회
러시아 혁명이 중간에서 실질적인 지주였던 레닌의 사인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매독이고, 둘째는 뇌졸증이다.  냉전구조를 만들어 내서 자국의 이익을 원하던 서방에서는 레닌이 매독에 의해서 죽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레닌의 사인은 뇌졸증일 확율이 더 높다.  레닌은 혁명의 와중에 혁명이 성공한 이후의 사회와 인류를 생각했다.  당연히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이고, 인류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성숙된 인간인 "신인류"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도 신인류는 탄생하지 않았다.  기존의 병리와 병폐에 익숙한 인간들은 타성에 젖은 것처럼 새로운 인류로 환골탈태되지는 않았다.  레닌의 이상주의적 인간관은 "왜? 어째서?"라는 질문 속에서 갈 길이 먼 것만을 확인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왜? 어째서?"라는 질문에 몰두하다보면, 반광인이 되어가고 그것이 심하면 혈관이 터져서 죽는다.  레닌이 혁명 후에 목격했던 인간이 다름아닌 우리의 모습이다.  그만큼 성숙된 시민사회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고, 우리에게 남겨진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로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성숙한 시민사회
지금은 아마도 절판이 되었거나 아예 책목록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는 러시아의 여성혁명가 클라라체트킨 선집과 에두아르드 푹스의 풍속의 역사(특히 제 1권)의 내용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자유와 권리와 의무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 그 속에서 안정된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을 향하는 모습을 찾아내려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 값을 늘려주면 셔터 스피드를 낮추어서 보상을 하고, 전체적인 노이즈를 없애기 위해 ISO값으로 전체적인 조율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마도 남, 녀, 그리고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구조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현재는 남, 녀 모두가 잘못된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해도 시간과 정열이 모자를 판이라고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잘못된 사회가 바라는 성대립이 더 극성이다.  성대립이 만들어진 잘못된 구조를 담지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정당한 권리의 요구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성은 없고 성대립만 존재한다면 그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익집단만이 존재하는 가슴없는 공허함만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인류는 탄생하지 않을지라도 잘못된 정치판과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성숙한 시민사회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잡년행진 잡스런 행진
생물학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조차도 용인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억지이다.  패미니스트의 남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남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명이나 될 지 의문이다.  엄연히 다른 신체구조와 그에 따른 기능의 발달의 차이 거기에 기원하는 정신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하여 인정을 하는 수준이 얼마나 크고 적은가의 문제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수준과 폭을 넓히는 것은 휴머니즘에 관계된 것이지 패미니즘은 아니다.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공존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이고 휴머니즘의 기본이다.  "놔도라, 쟤도 인간이다"  조금은 냉소적이긴 하지만, 휴머니즘의 발로이다.  그러나 방향성을 잡지도 못한 가두행진을 보면서 그것에 마치 패미니스트가 되는 양 찬미와 찬사를 보내는 트윗질을 보면 역겹다.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만 못하다.  잡년행진자의 등짝에 써붙인 "I'm Hot"을 보자마자 'So What?"이라는 반응만 나온다. 

길거리의 여자들이 후끈 달아올랐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반응은 아마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수많은 광고가 제품을 제외하면 수많은 섹스 연관성만 남는 경우가 많다.  남녀 모두가 암시적인 섹스문구로 범벅이 되어있다.  이러한 현상이 정치적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부장 중심의 사회였고, 가부장의 핵은 남성이니 남성을 대상으로 공격성을 보여주는 것은 썩은 나무의 가지를 치면서 흡족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의 잡년행진은 캐나다에서 보여준 문구 그대로 답습하고, 소위 민중에게 권력이 있는 민주사회라는 가정 하에서 잔가지에 칼을 들이대는 서구의 얕은 정신세계를 답습한 "볼거리 수준" 혹은 "오늘 나 떳어요" 정도의 자기 과시를 넘어서지 못하는 잡스런 행진이었다. 

노조도 그렇고 정당도 그렇고, 모두 이익집단화 된 사회에서 이익이나 챙기면 되는 사회이다보니 권리주장만 크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적다. 


시민사회의 정당한 인권은 정치적 자유와 민중권력
흑백 둘중의 하나, 차선이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공존의 기본은 대안부재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도기적 여성인권 운동은 20년 전부터 보아 온 식상한 메뉴이다.  남녀의 대립을 강조하고, 결국에는 개인의 정신적 편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수단이다.  거기에 놀아나는 것은 방향성의 부재일 뿐이다.  클라라체트킨처럼 정치적 권력에 대한 저항과 정당한 권리의 요구를 전제로 한, 민중권력의 창출을 위한 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주변만을 핧고 있는 식상한 가두행진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는 바램이다. 

여성 속옷 브랜드 프로보커티브의 게릴라 마케팅처럼 보이는 시위에 박수를 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어이없는 프레시안 글을 보고 쓴소리 한마디.  사진은 노컷

P.S. 남녀 여러분 제발 TV처럼 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옷을 입고 다닙시다.  그리고 성적 암시를 내포한 단어가 쓰여진 옷은 가급적 입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특히 암시도 아니고 노골적인 성교 준비단어인 Hard On이라는 단어는 errection 다시말해 '발기'입니다.  I'm Wet도 본 것 같은데, 정말이지 못봐주겠네요.  I'm Hot은 정말 애교지요.  나는 덥다고 할 때, I'm hot 쓰면 전국민이 꺼뻑 죽는 외국인들도 음흉하게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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