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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남자가 삐지면 나무를 끌어안고 죽는다.  왠지 여자보다 스케일이 작은 것 같은 생각이 들게하고, 남자들이 삐지게 되면 더 속 좁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안고가는 면에서는 여자와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날의 한식의 유래를 만들어 냈다는 진문공과 개자추의 이야기와 거기서 나오는 포목소사에 대해 몇자 끄적여 본다. (다음의 글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다 보니 나이와 같은 내용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을 듯합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진 헌공이 융족을 멸하고 취한 여희가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부자간을 이간시켜 왕자들을 죽이려하자 헌공의 아들인 공자 중이는 해외로 망명하여 이곳저곳을 방랑하게 된다.  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여자에게 쫒기어 방랑을 하게 된 것이다.  40대 초반 방랑을 시작할 때 그의 곁에는 몇명의 가신들이 공자 중이를 따라 나섰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다름아닌 개자추이다.  왕가의 아들이 초근목피로 살아갈 때, 후에 진문공이 될 공자 중이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잘라내어 공자 중이를 부양한 일화로도 유명한 개자추는 20년 가까이 방랑을 함께한 충신이다.  왕권을 탈환하고 진문공이 된 중이가 논공행상의 과정에서 충성을 다해 자신을 봉양했던 개자추를 잊고 포상을 하지 않아 개자추는 섭섭한 마음을 안고 산속으로 잠적해 버린다.  뒤늦게 이를 알게된 진문공이 개자추를 찾았으나 산속에서 나오지 않자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 했으나 결국 개자추는 진문공이 보이는 구릉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었다.  이를 포목소사라고 하는 것이다.  진 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날을 불을 쓰지 않는 날로 만들었고 그로인해 더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이 되어다.   이것이 한식의 유래라고 한다. 

논공행상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진실이 가려져 정확한 논공행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조직을 와해시키고 붕괴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진실된 사람을 잃게 되는 첩경이다.  그러나 진문공의 본심은 개자추를 잊은 것도 아니고 고생을 같이한 사람을 박대하지 않았기에 더욱 훌륭한 인물이고 패자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진문공이 실수를 하여 자신과 여러운 시기를 해쳐나온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못하기는 하였으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기 위해 선의로 한 행동이 사람을 죽게하기는 했으나 진심만은 볼 수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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