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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09:49 리뷰/뉴스리뷰
몇 주 전에 발행된 페타의 동물보호를 위한 광고가 문제가 되었다.  선정성과 종교적인 이슈로 서양보다도 한국에서 더 큰 반향이일고 있다.  이어서 오늘은 브아걸이 선정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브아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전반에 걸친 섹시코드와 섹스코드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 준비된 글이다.  다시한번 한국과 세계의 섹시코드와 섹스코드를 페타의 광고를 계기로 반추해 보는 것이다. 

섹시코드 or 섹스코드
현실에서 많은 단체와 집단이 동물보호를 위한 광고와 홍보 그리고 실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광고와 실천적인 행동에 있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일반인들까지도 자신이 옷을 벗으면서까지 시위를 하도록 종용하고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고 대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누드 대세론이다.  이러한 누드 대세론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술이어야 누드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더더욱이 아니다.  예술을 운운하면서 누드가 커다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상업주의의 사악한 의도를 감추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다.  거의 모든 신문의 기사거리이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는 화보집은 레이싱걸에서 잘나가는 배우, 한물간 배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섹시미를 운운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섹스코드를 주입하고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도 못하도록 조장이 되고 있다.  섹스코드와 섹시코드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섹시와 벗는다는 것을 동일시하면서 의식의 오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은 왜곡된 문화코드인 섹스코드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조장한다.

섹스코드와 상업성
10여년 전에 상술때문에 보도가 되었는지 혹은 실제로 유행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드촬영을 하는 일반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내용으로 신풍속이 소개되었다.  젊어서의 몸매를 늙어서 보고 싶다는 것이 주요이유였지만 늙어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게 아니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기도취의 표현방식일 뿐이다.  바로 이러한 정신상태는 섹스코드를 양산하는 자체 에너지원이 되고 있으며, 섹스코드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섹스코드를 제공을 하고 남성은 그 코드를 소비하는 형태를 취하였지만 현재는 그 생산과 소비는 상호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  남성도 섹스코드를 창출하고 여성이 그것을 소비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화보집은 돈을 벌기위한 근거를 마련하거나 그 자체로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다.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되면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자유의 선봉대라는 지위까지 넘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모호해진 예술과 섹스코드 사이에서 자신의 위상을 잡아가고 있다.  섹스코드와 상업성이 연계되고 예술적 승화라는 타이틀을 수여받으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섹스는 돈으로 구입가능한 것이라는 생각과 남녀는 공히 섹스를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섹스코드가 예술로 포장이 되면서 스스로 확대재생산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받고, 섹스코드의 구입과 인격이 아닌 성상품의 구입이 사회적 통념으로 발전할 여지를 만든다.

섹스코드의 예술적 인정
섹스코드는 프로이드의 개념을 빌리자면 잠재의식 혹은 리비도의 강화를 가져온다.  섹스코드 자체는 파괴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자극한 리비도는 타나토스, 즉 죽음과 파괴의 본능을 강화시킨다.  섹스 그 자체의 비파괴적 성격은 이면에서 확대 생산되는 죽음과 파괴
본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섹스코드와 파괴본능이 현대에 와서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을 받는다.  상상력의 부재와 사이코적 파괴, 성기 강조라는 주제가 예술적 주제로 인정받는다.  교감으로써의 섹스가 아니라 성기의 교접과 쾌락으로써의 포르노그래피가 예술로써 인정을 받는 시기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잔혹한 살인과 아동과 임산부가 볼 수 없는 신체절단의 역겨운 연출 또한 예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친구'가 조직 폭력배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위험한 신체절단이나 잔혹한 살인과 혼음은 예술이라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돈으로 구입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보다 더 위험한 수준이 바로 이러한 섹스코드와 죽음 파괴본능이 예술적으로 인정이 되는 상태가 더욱 위험하다.  수십명의 여성을 납치하고 죽이는 사이코패스도 행위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단계가 섹스코드의 이면까지도 용인되는 사회의 도래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섹스코드와 정치
섹스코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과 정치"이다.  성적 억압은 남녀 모두에게 공히 적용되는 사회적인 선전이다.  이러한 성적 억압으로 부터 해방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무리들은 비예술을 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 섹스코드를  확대 재생산하는 집단이다.  성이 물리적인 억압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고, 성적 억압은 상징적을 표현이 된다.   오히려 성, 혹은 섹스코드  그 자체를 확대하면서 정치적 이슈를 흐리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3S정책이 오히려 정치적인 동물인 인간의 정치의식을 희석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성에 대한 담론의 농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정치적인 의식과 논리는 약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층구조의 상부층은 그것을 즐기고, 하부계층으로 확산이 되어 수준이야 떨어지만 유사한 문화가 더 깊이 전파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가 지적을 했듯이 사생활이 노출되어 있다는 상징적인 도구를 통하여 지배를 강화한다.(파시즘의 대중심리)  커뮤니케이션과 공감이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배설구조를 조장하면서 상징들을 통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에서는 이러한 상징들이 기술력으로 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중구조로 인해 대외적으로는 섹스코드를 확산하지만 가정에서는 섹스코드를 감추기 위한 엄숙과 근엄함만이 남아있는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대인관계와 가족관계의 괴리가 발생하고, 이러한 괴리와 이중성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애로스가 아니라 성기숭배와 잔혹한 이미지와 영상이 주가되는 것이다. 

섹스코드의 자발적 동조자 혹은 수동적 동조자
파괴본능과 죽음이 강조와 예술로 승화된 섹스코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상생활이 된다.  이중적인 태도와 사고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며, 변화되지 않는 삶이라는 것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상황이 주는 결과는 예측이 가능하다.  자신의 결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 정치에 대한 거부와 저항은 최소화되고 개인적인 분노와 물리적 심리적인 폭력과 횡포가 증가하고, 나아가서는 중세의 마녀사냥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올해도 수차례 있어왔던 마녀사냥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면서 특정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제언을 하고 싶은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가 이러한 섹스코드의 자발적인 동조자는 아니어도 수동적인 동조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라지 않는 동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 방법적인 회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방법적 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기 위한 시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기사가 왜 이 시점에 나오게 되었는가와 어떻게 주제로 채택이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우리가 수동적으로도 그들의 논리와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페타의 광고가 가지는 숨은 의미와 소위 말하는 비예술의 예술을 비교하는 후편을 작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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